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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패션을 좋아하시는 패션을 좋아하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스트릿 패션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 스투시, 슈프림 그리고 베이프, 베트멍, 오프화이트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보신다면 이것들이 조금 약해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충격적이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특별한 메시지를 주는 것 그런 걸 예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근데 그 메시지가 반항적이라면 어떨까요? 항상 위험한 브랜드 그래서 죽여주는 브랜드 퍽트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1. 퍽트 디렉터 에릭 브루네티 이야기
1967년 미국에서 태어난 에릭 브루네티는 어려서부터 좋지 못한 환경에 있었습니다.
버지니아의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이혼했죠.
어머니와 같이 산 부르네티는 고등학교 때만 4번이나 이사를 갑니다.
집이 가난했기 때문이었죠. 부르네티는 공부도 안 하고 학교도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좋아하는 게 두 가지 있었는데 바로 미술과 펑크락이었습니다.
미술 학교를 들어가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포기하고 혼자 뉴욕으로 떠납니다.
그때 부르네티가 18살 때였습니다. 먹고살아야 하니 낮에는 자전거 택배 일을 합니다.
하지만 좋아하던 미술도 하고 싶어 밤에는 그래피티를 그렸죠.
벽이나 버스, 지하철 같은 곳에 그렸는데 사실상 그린 게 아니라 공공시설을 훼손한 거죠.
마치 왕십리역 스크린도어에 페인트칠을 하는 것처럼 부르네티는 이런 공공재산을 파괴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습니다.
나중엔 이렇게도 말했죠. 나는 세금을 내기 때문에 원할 때 공공재를 파괴할 권리를 가진다.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 모르지만 반항적인 감정은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피티는 계속했지만 자전거 택배일은 5개월 만에 없어집니다.
세상이 빠르게 발전했기 때문이죠. 돈을 벌 수 없던 브루네티는 다시 어머니가 있는 펜실베이니아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브루네티는 바로 여행을 떠납니다.
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목적도 이유도 없이 일단 텍사스로 갑니다.
이것저것 타면서 놀다가 차에서 살기도 하고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죠.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이번엔 캘리포니아로 갑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에는 스케이트보더가 많았죠.
스케이트보드의 면을 데크라고 하는데요. 이 데크는 도화지 같은 개념이었으니 여기에 다양한 그림을 그렸죠.
단순한 그림도 그리지만 이렇게 과감한 것도 상징적인 걸 넣기도 했으니 그 당시 월드 인더스트리스라는 스케이트보드 업체가 있었는데 브르네티는 거기서 데크를 디자인하게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지만 실무는 달랐습니다.
거기서 제대로 된 그래픽을 기본부터 배우기 시작하죠. 그렇게 기본기를 다진 브루네티는 다시 떠납니다.
1987년 이번엔 베니스로 가죠. 스케이트보드를 좋아했던 브르네티는 베니스에서 나타스를 만납니다.
나타스는 스케이트보드 선수인데 워너원이라는 스케이트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브루네티는 자연스럽게 같이 일했고 워너원에서 그래픽을 그리기 시작했죠.
그래픽에 반항심이 보이지 않나요? 어쨌든 브르네티와 나타스는 같이 어울렸습니다.
그 당시 스케이트보드는 품질도 중요했겠지만 데크에 있는 그림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그림을 자세히 보면 뭔가 섬뜩하기도 하고 기발하기도 합니다.
창의성이 필요한 작업이 마침 부르네티는 그림을 그릴 줄 알고 나타스는 스케이트 회사를 운영했고 이 둘은 그래픽 회사를 만들기로 합니다.
영어 단어 중 가장 공격적인 단어 그 단어처럼 들리지만 보이는 건 다른 언어 1990년 그렇게 퍽트라는 브랜드가 시작됩니다.
글자를 보면 이게 아닌 것 같지만 발음하면 FT 그냥 욕으로 들립니다.
브루네티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싶었죠. 그래서 혼란스러운 로고를 만들기 위해 나타스와 잡지를 뒤지기 시작합니다.
다양한 광고 로고들을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폰트를 그 폰트를 살짝 늘린 이 로고 본격적이지만 기업처럼 보이는 이 로고는 지금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죠. 퍽트는 물건을 팔기도 전에 잡지에 광고부터 했으니 검은색 페이지 안에 이 광고는 퍽 트입니다. 단순히 이렇게만 적은 광고였죠.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혼동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2. 퍽트 예술의 시작
그리고 이제 예술품을 만들기 시작. 브루네티의 창작물은 그래픽이었고 그 그래픽이 들어갈 도화지는 스케이트보드가 아니라 티셔츠였습니다. 광고가 먹혔는지 시작부터 잘 판매됐지 겨우 프린팅 티셔츠를 제가 예술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유를 잠깐 설명드릴게요. 유명한 미술품들이 같이 있는 이유는 사용한 기법 그림의 사상이나 시대적 배경 그림의 대상이 참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술품이라고 부르는 앤디워홀의 작품을 볼게요. 이 작품이 예술인 이유는 실크 스크린 기법 참신한 소재 때문인데요.
자고로 예술품이라 하면 붓에 물감을 묻혀 그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실크 스크린은 대량 생산을 위해 발명된 방식이고 이질적이고 참신합니다. 작품의 소재로 코카콜라, 마릴린 몰로 같은 대중적인 걸 사용했는데 이것 역시 전통적인 미술에서 사용하지 않는 대상이죠.
이런 관점에서 퍼트와 예술은 비슷한 면이 꽤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보시면서 판단해 보세요. 시작부터 퍽트는 과감했습니다.
초창기 퍽트의 그래픽인데요. 뭔가 이상한 게 느껴지시나요? 아마 자동차 좋아하시는 분들은 느끼셨을 겁니다.
이 그래픽은 미국의 자동차 회사 포드의 로고와 굉장히 비슷한데요.
포드는 미국인이라면 모두 아는 회사입니다. 굉장히 대중적이죠.
그런 대중적인 로고에 창의성을 넣은 겁니다. 물론 포드로부터 판매 정지 명령을 받았지만 다음 퍽트를 보시죠.
보시기 전에 영화 포스터부터 보여드릴게요. 조스라는 영화인데 딱 봐도 여자가 위험해 보이죠.
굉장히 유명한 대중적인 포스터입니다. 이걸 사용한 퍼트의 티셔츠를 볼게요.
빨간색 로고. 물속의 배경은 같지만 사람과 상어의 위치가 바뀌었네요. 마치 여자가 상어를 공격할 것 같은 모습이죠.
이 그래픽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섹시한 여자의 위험성이나 영화의 중요성, 여성과 남성에 대해 볼 수도 있죠.
영화 포스터를 그대로 갖다 쓰기도 합니다. 굿펠라스 좋은 친구들이라는 영화인데요.
재밌는 건 퍽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온 영화입니다. 146분 영화에 300번 나오니 대충 1분에 두 번 나오는 꼴이죠.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꼽히는 대중적인 영화입니다. 음악도 있습니다. 이 혓바닥 그래픽 보신 적 있으시죠?
이건 영국의 밴드 롤링 스톤즈의 로고입니다. 1960년대에 활동했던 밴드인데 2020년대 우리도 알고 있을 정도니 대중적인 밴드죠.
지금은 정말 많은 브랜드에서 이 로고를 사용하지만 최초로 사용한 건 트라고 주장합니다.
이 외에도 유명 사진사가 찍은 유명 성인 배우 프린팅 맥도널드의 패러디 등등 여러 가지를 창조했습니다.
퍽트의 인기는 점점 올라가고 유니온이라는 편집숍에도 납품하기 시작합니다.
유니온은 신진 디자이너에게 초점을 맞춘 스트릿 편집샵인데요.
그 당시 유니온엔 3명의 대표가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스투시에서 일하다 나중에 브랜드도 만드는데 그게 슈프림입니다.
그만큼 유니온은 스트릿 패션의 성지 같은 곳이었고, 퍼트는 그런 유니온에서 인정할 만큼 스트릿 한 브랜드였죠.
1993년 스트립 브랜드 엑스라지가 퍽트에 접근하고 협업을 합니다.
엑스퍽트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제작하였습니다. 근데 이 그래픽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요?
네 스트립 브랜드 베이프의 그래픽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브루네티는 대놓고 베이프와 베이프 디자이너 니고를 싫어했습니다.
혹성 탈출 그래픽을 자기가 생각한 것처럼 말하고 전혀 독창적이지 않다고 말했죠.
어쨌든 이 엑스퍽트는 굉장히 성공적이었습니다.
많은 제품들을 팔았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브루네티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신을 사업가가 아니라 예술가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브루네티는 매출이나 생산은 신경 쓰지 않고 그래픽만 만들었죠.
결국 금전적 문제로 다투고 브루네티는 엑스퍼트를 그만둡니다.
다행히 퍽트는 가지고 나왔죠. 그리고 계속해서 신선하고 창의성이 담긴 그래픽을 창조합니다.
근데 퍽트에는 고질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상표 등록이었죠. 등록을 하고 싶어도 퍽트라는 단어가 너무 욕처럼 들리기 때문에 특허청에서 받아주지 않았죠.
이건 브루네티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자신의 창작물이 법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하니 돈만 생각하는 장사꾼들이 가품을 만들어 팔았죠.
이건 퍽트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스트릿 브랜드도 비슷한 상황이었죠.
브루네티는 이렇게 말합니다. 법 밖에 있으려면 법을 배워야 한다.
브루네티는 상표법을 공부하며 법원과 싸우지만 계속해서 패배합니다. 그러다 2008년 상표법을 공부하던 브루네티는 이 로고가 상표 등록이 안 돼 있는 걸 발견하고 상표를 등록해 버립니다. 그런데 이 로고는 범죄집단 LA의 로고였습니다.
7개의 코브라 대가리를 상징하는 로고인데요. 등록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브루네티가 등록하기 전까지 이 로고는 범죄 집단을 상징하겠지만 등록하는 순간 소속은 퍽트가 되기 때문이죠.
동시에 범죄 집단의 정체성도 없애버리는 겁니다.
하지만 퍼트는 등록이 안 됐죠. 어쨌든 활동은 계속합니다.
부루네티는 같은 해 2008년 일본으로도 진출하는데요.
SDD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듭니다. 기존보다 옷에 집중한 브랜드인데요.
60~7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옷을 만듭니다.
퍽트의 고향인 LA가 담긴 스카잔 오래된 디바이스 1세대 자 그리고 이건 카르트, 디트로이트 재킷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똑같네요.
이건 휠라를 이용했고요. 좀 전에 등록한 7개 코브라 그래픽도 사용합니다.
옷에도 집중했지만 여전히 퍽트 다운 감성을 가졌습니다.
브루네티가 굳이 일본에서 이 브랜드를 시작한 이유는 미국인보다 일본이 미국 대중문화를 더 잘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작업을 하면서도 여전히 상표권 싸움도 계속합니다.
2011년 퍽트 귤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도 만들고 다시 상표권과 싸우고 2015년 책도 내고 다시 상표권과 또 싸우고 또 패배합니다.
법원 입장도 있습니다. 이걸 만약 통과시켜 주면 다른 비슷한 스트릿 브랜드도 줄줄이 통과시켜 줘야 되거든요.
그리고 2019년 결국 어떻게 됐을까요? 상표권이 등록됩니다.
줄줄이 사탕으로 브랜드 퍼킹 어 썸도 등록되죠.
1990년에 퍽트를 시작했으니 거의 30년 동안 쌓은 겁니다.
브루네티에게는 가치를 지키는 게 그만큼 중요한 게 아닐까요?
루이뷔통, 구찌, 샤넬 같은 명품 브랜드들이 항상 스트릿을 본다고 브루네티는 말합니다.
스트릿은 가공되지 않은 날것이고 진짜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과거에 하이패션이 스트릿을 따랐지만 지금은 반대라고 말합니다.
과연 지금의 퍼트는 어떨까요? 여전히 이 그래픽을 사용하고 여전히 퍽트 안에요.
제가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보통 수영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손으로 온도를 확인합니다.
물이 차가운지 미지근한지 확인하고 이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뛰어와서 그냥 빠져버리는 사람이 있네요.
그게 에릭 브루네티입니다. 사람들이 비난하지 않을까 싫어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 따위는 버린 채 파격적인 그래픽을 공개했죠.
브루네티는 그것들이 정치적이나 신념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냥 기존의 틀을 파괴하는 창작물일 뿐이죠. 예술은 비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5만 원짜리 퍽트 티셔츠 저는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그 어떤 것이 예술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