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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

    오늘 이야기 젤에 집착하는 브랜드 아식스 이야기입니다.
    아식스는 편안한 착용감에 러닝화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있죠.
    제 학창 시절 때만 하더라도 그 편안함만 추구하는 아저씨들이 신는 신발이었습니다.
    현재는 리셀가가 붙는 스니커즈를 내는 핫한 브랜드가 되었죠.
    지금 아식스의 폼이 전성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지만, 사실 지금보다 찬란한 과거를 가진 역사 깊은 브랜드입니다.
    아식스의 시초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이후부터 시작합니다.
    아식스는 77년에 생긴 브랜드인데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설명드립니다.
    아식스는 개명한 브랜드 이름입니다. 아식스이기 이전의 브랜드 네임이 바로 오니츠카타이거죠.
    이 오니츠카타이거는 청소년을 위한 운동화 제작으로 시작된 브랜드입니다.

    1. 아식스=오니츠카 타이거

    당시 일본은 전쟁에서 패망하여 52년까지 핵을 쏜 원수 미군에게 도움을 받으며 다시 기반을 재건하던 시기였죠.
    그때 당시 상황은 암담했습니다. 사무라이 장교였던 브랜드 창립자 오니츠카 키하치로도 군인 신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걸 시도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막막한 그가 조금이라도 조언을 얻고자 전우이며 친구인 교육위원회 보건체육과장 쿄리 고헤이에게 찾아갑니다.
    대뜸 그에게 아이들을 위한 스포츠 신발 사업을 제안합니다.
    자신과 전혀 관련 없는 운동화 사업 제안에 의아해했고, 그런 그에게 고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건강한 육체가 바탕이 되어야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의미죠.
    현 일본의 희망은 우리 아이들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올바른 정신을 갖추려면 운동으로 건강한 몸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들을 위해 운동화를 만들어주세요. 그 말에 감명을 받은 키아치로는 사원 총 4명, 기초 자본 30만 엔으로 운동화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훗날 이 라틴 문구의 이니셜이 이 브랜드 네임이 되죠.
    어쨌든 그렇게 시작한 오니츠카 주식회사가 처음 선보인 운동화는 바로 농구화입니다.
    운동화 중 고려해야 될 것이 많은 농구화를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높은 진입 장벽을 넘으면 나머지 운동화들도 쉽게 진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외관만 보면 그때 당시의 농구와 컴버스와 유사합니다.
    하지만 여기엔 그의 아이디어가 숨겨져 있죠. 일본의 오이 문어 샐러드를 먹다가 발견한 문어빨판 구조를 밑창에 적용한 것입니다.
    이것은 농구 종목에서 필요한 방향 전환 턴 순간 스퍼트를 내는 데 적합한 디자인이죠.
    1952년까지 청소년 농구 우승팀이 이 신발을 신었고, 56년에는 올림픽 국가대표 공식 신발로 발탁되기도 했습니다.
    이 신발의 성공으로 키아치로는 민첩함과 강인함의 상징인 타이거를 자신의 이름과 섞어 브랜드 네임을 오니츠카타이거로 명명합니다.
    그러곤 다음으로 진입한 분야가 바로 러닝와입니다.
    여러분 엄지발가락이 갈라져 있는 마르지엘라의 타비슈 나이키의 로드 워리어스보다 아스가 먼저 이 디자인을 운동화에 접목시켰다는 걸 알고 계신가요?
    당시 일본에서 운동용 타이 양말이 쓰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오니츠카가 고무 미창과 내구성 있는 어플을 사용해 보다 더 적합한 러닝화 형태를 고안해 냈죠.
    그 뒤로도 러닝화를 계속 만들었는데 이 모든 운동화들이 장거리 마라톤을 하는 데 부적합하다는 걸 발견합니다.
    마라톤을 한 번 뛸 때마다 어마어마하게 잡히는 물집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신발을 개발하고 싶어 각종 논문과 기술들을 찾아보았으나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과거에 많은 사람들이 목욕을 하며 아이디어를 떠올리듯 그도 욕조에서 무심히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던 중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물집은 사람의 몸에서 나는 병인데 왜 원인을 신발에 관한 논문에서 찾고 있는 건가?
    의사를 찾아가 보자. 그는 의사와의 대화를 통해 마찰과 충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열이 물집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열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제일 효과적인 것이 바로 신발의 앞 위 그리고 아치 부분에 구멍을 뚫는 공랭식 방법이었습니다.
    아치 부분에서 지면을 디딜 때 펌프처럼 공기를 순환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 기존에 꽉 막힌 신발보다 온도를 훨씬 더 낮췄습니다.
    물집도 훨씬 덜 잡혔죠. 그 신발이 바로 매직 러너 마라톤 러닝화입니다.
    1962년 마라톤 대회에서 이 신발을 신고 메달을 따서 전 세계적으로 오니츠카 브랜드의 이름을 알리게 한 신발입니다.
    이렇게 일본의 브랜드가 그 당시 유명 브랜드에 비해 값싸고 질 좋은 신발을 낸다고 소문이 조금씩 퍼지기 시작했고, 일본 신발에 관심이 있는 미국인 1명이 판매권을 달라고 일본에 찾아오죠.

    2. 나이키 시작의 발판이 된 아식스

    바로 나이키의 창업자 필라이트입니다. 판매권을 얻어 블루리본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오니츠카타이거의 운동화를 성공적으로 판매했죠.
    나중엔 독립하지만 알려드리고 싶은 건 나이키의 뿌리에 바로 이 브랜드가 있었다는 겁니다.
    러닝화까지 성공하자 이제 레슬링, 체조, 축구, 펜싱, 다양한 분야의 운동화로 발을 넓히기 시작합니다.
    코르테즈 1966년 멕시코 올림픽을 타깃으로 한 운동화를 출시합니다.
    그중 하나가 이소룡 신발, 혹은 영화 킬빌의 우마서먼의 신발로 알려진 모델이죠.
    아디다스와 비슷한 로고 디자인을 사용하다가 이 신발부터 4개의 교차된 선을 로고 디자인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아식스의 시그니처 디자인으로 쓰이고 있죠.
    근데 이 로고 디자인에는 숨겨진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세로선은 신발끈이 발등 전체를 조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이고, 휠 쪽에서부터 위드풋까지 내려오는 가로선은 뒤틀림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디테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초기 디자인은 재질도 단단하고 이 선들이 다 연결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기술의 발전으로 디자인과 상징만 남아 있죠.
    어쨌든 이 로고 디자인을 제외한 신발의 외관을 보고 혹시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으셨나요?
    네 나이키의 코르테즈와 매우 유사한 디자인이죠.
    멕시코라고 불리는 이 신발은 사실 나이키의 코르테즈와 같은 모델입니다.
    나이키이기 이전 블루리본 스포츠였을 때 동업자 빌바우먼 코치와 오니츠카타이거가 공동으로 제작한 신발입니다.
    처음에는 tg 24, 그 후 tg 멕시코. 그런데 두 회사 간의 대화 결과 이 이름이 별로였다고 생각했는지 멕시코 문명과 관련된 아즈텍으로 이름을 바꾸었죠.
    하지만 아디다스의 아즈텍 골드와 이름이 겹쳐 최종적으로 바뀐 이름이 아즈텍을 멸망시킨 정복자 코르테즈였습니다.

    훗날 나이키의 창업자 둘은 블루리본을 그만두고 오니츠카타이거와의 계약을 끝냅니다.
    그리고 법정 싸움까지 갔었는데 코르테즈의 판매권도 이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가장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였기에 누구도 포기할 수 없었죠.
    결국 신발 디자인은 두 브랜드 모두 사용이 가능하나 나이키가 코르테즈 이름에 대한 권리를 차지하게 되어 오니츠카는 이 신발을 타이거 코르세어라고 바꿨습니다.
    현재도 판매 중이니 사이트에서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1977년 오니츠카타이거는 자사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스포츠웨어 브랜드 gto와 니트웨어회사 젤랭크와 합병합니다.
    이때 잊지 않고 있었던 영감이 된 라틴 문구의 이니셜을 따서 아식스로 개명하죠.
    이 합병으로 당시 일본의 가장 큰 스포츠 회사가 됩니다.
    하지만 여러 경쟁 운동화 브랜드의 기술력에 밀려 점점 코너로 몰리게 되죠.

    3. 아식스 젤의 탄생

    1986년에 나이키의 에어솔에 대한 대항마로 젤을 선보입니다.
    반유체 실리콘 전자제품에서 나오는 진동을 줄이는 역할을 했던 물질이죠.
    처음 젤은 알파젤이라고 불렸으며 그 젤이 들어간 신발은 프릭스 알파 모델입니다.
    이 모델은 사실상 일본에서만 발매되어 영향력은 미미했으나 다음에 나온 젤라이트 모델이 미국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죠.
    89년 기준 49달러로 충격 흡수제를 탑재한 당시 가장 가벼운 러닝화였습니다.
    그 뒤로 93년 젤 카야노, 99년 젤 님버스, 06년 젤 킨세이 등 다양한 젤 모델이 탄생하게 됩니다.
    사실 젤은 현대에 적합한 기술이 아닙니다. 충격 흡수에만 최적화된 물질이라 반발력과 쿠셔닝을 동시에 만족하는 오늘날의 소의 기능에 못 미치는 물질이 아식스의 신발들에서 우리가 좋은 착용감을 느끼는 건 다른 재질의 미드솔이 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근 모델들은 아주 손톱만큼 아니면 시각적으로 보이는 부분만 젤을 넣습니다.
    심지어 이걸 들어갔다고 말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소량이 들어간 모델도 존재하죠.
    하지만 아스는 모델명에 젤아라는 단어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젤이라는 물질에 아식스의 브랜드 정체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결론:

    어글리슈즈가 유행하면서 콜라보 제품이 성공하면서 유행하는 룩에 어울리는 신발이 되면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아식스의 인기가 오르는 중입니다. 아식스는 여타 스포츠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하는 숙명을 가졌습니다.
    지금까지도 각 모델의 넘버를 올려가며 꾸준히 갱신 발전시키는 전략을 보여주고 있죠.
    최근 몇 년간은 다양한 브랜드와 디자인 협업을 진행하며 기술뿐만 아니라 디자인적인 시도도 더 폭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협업의 꿀맛을 알게 해 준 키코를 시작으로 여태껏 해온 콜라보 제품들을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에도 더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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